Scroll Down

※ 크롬 브라우저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판교의 오늘은 곧 미래의 꿈이다. 지난해 12월 한 달간, 판교의 발 디딜 틈 없는 출퇴근 버스에 올라타 몸을 부대끼고 커피를 마시며 틈틈이 대화를 나눈 끝에 얻은 결론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기업의 직장인, 이제 막 방구석을 탈출해 창업에 도전 중인 스타트업 대표 등 우리가 만난 '판교인'은 저마다 이력과 개성이 달랐지만 '판교는 기회의 땅'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출근전쟁

602-2B번 버스 탑승기

몸과 몸이 밀착한 버스 안에 뒷 사람의 숨소리를 피해 나갈 공간은 없었다.

다음 정류장인 'H스퀘어'에서 40명 가까이 내린 뒤에야 간신히 숨통이 트였고, 여러 기업이 입주한 '이노밸리' 앞 정류장에서 20명 넘게 더 내리자 비로소 빈자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버스는 마지막 역인 판교테크노밸리 서북쪽에 있는 '세븐벤처밸리'를 돌아 다시 판교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막 신분당선에서 내린 승객들로 금세 다시 만원이 된다.

 

쉼 없이 달리는 만원 마을버스의 행렬 속에 판교의 아침이 지나갔다.

지난 12월 23일 오전 9시.

판교역에 도착한 신분당선 출입문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뛰기 시작했다. 함께 달리며 "왜 뛰냐"고 묻자 "마을버스를 타야 된다"는 짤막한 답이 돌아왔다. 뛰는 이들을 쫓아가니 '602-1B·2B번 맞춤형 마을버스' 정류장. 판교역과 판교테크노밸리를 순환하는 출퇴근 버스 노선인데,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602-1B번은 만원 상태로 떠나는 뒷모습만 바라봐야 했고, 막 도착한 602-2B번 버스는 출입문 계단까지 가득 찬 앞문을 피해 뒤쪽 출입문으로 겨우 몸을 구겨 넣을 수 있었다.

이미 전 정거장(판교역 남편)에서 승객을 34명이나 태우고 온 이 22인승 버스는 기자가 탄 판교역 서편정류장에서 46명을 더 태우고서야 출발했다.

 

​숫자로 보는 판교테크노밸리

업종현황

863개

IT(정보통신기술)

CT(문화기술)

175개

BT(생명공학기술)

165개

NT(나노기술)

14개

임직원수

입주업체

 

"판교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신도시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본 역사가 없다.

필요해서 기획됐고 필요한 것만 지어졌다.

필요한 만큼 의무가 주어졌고 필요가 없으면 버려졌다.

경기도 신도시를 상징하자면 가장 쉽게 떠올릴 말은 '베드타운'이다.

낮에는 불이 꺼지고 밤에만 불을 밝히는, 소비는 있지만 생산은 없는

 살아있지만 죽은 도시. 

그런데 판교는 다르다.

지금까지 보아 온 신도시의 풍경과 사뭇 다르다.

매일 아침 판교로 향하는 도로에는 활발한 움직임이 가득하다. 

2008~2018 판교 스카이뷰

2008년
2015년
2010년
2018년

벤처산단 개발, 승부수를 던지다

판교를 품고 있는 경기도의 고집이 지금의 판교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여느 신도시처럼 판교도 한때는 서울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한 베드타운이 될 뻔했다. 
그런데 경기도가 제동을 걸었다.

더 이상 수도권에 주민의 90%(2001년 기준)가 서울 등 타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1기 신도시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던 셈이다.
그러면서 들고 나온 것이 '첨단벤처산업단지' 개발을 동반한 신도시 건설이었다. 

Interview

임창열·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판교 운명 가를 승부수

'판교를 주거단지로 개발하는 것은 우리 경제 도약의 중요한 기회를 일실하는 결과 초래'

임창열 전 경기도지사(현·킨텍스 대표이사)가 건넨 2000년 경기도정 업무보고에는 자못 비장한 문장이 적혔다.

입주 경쟁 치열했다

손학규 전 지사는 "솔직히 판교 테크노밸리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 못했다.  그만큼 기술을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 기업들의 목마름이 판교로 모였던 것"

사람숲에서 기회를 낚다

판교인은 매일 을 꾼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판교는 '창업하기 좋은 곳'이다. 공공의 든든한 지원을 바탕으로 서울의 고급 인력들이 판교를 '마지노선'으로 출퇴근하고 있어 매력은 여전하다. 탄성 파우치 용기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이너보틀'의 오세일 대표는 "판교의 장점은 '구룡터널'만 지나면 회사에 올 수 있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판교는 서울 강남에서 오가기 편하고 안산 등 경기 서부권, 화성 등 경기 남부권으로 이동하기 편하다"며 "스타트업은 인재를 잘 구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판교는 구인이 잘 된다"고 설명했다. 

 
1/3

자유로운 기업문화는 성공의 원천

여느 오피스타운이라면 한산해야 할 오전 11시, 카카오가 입주해 있는 H스퀘어 N동의 카페에 들어가니 후드티를 입은 이 회사 직원들로 북적였다. 삼삼오오 회의를 하기도 했고, 혼자 앉아 노트북과 씨름하는 사람도 많았다. 

 

후드티 차림으로 혼자 작업 중이던 '판교인'에게 물어보니 "꼭 사무실에서 일해야 하는 건 아니다. 집중이 안되면 카페로 내려와 일하기도 하고, 사내 카페나 곳곳의 오픈형 회의실에서 자유롭게 회의하고 일한다"고 말했다.

카카오뿐만 아니라 판교테크노밸리 내 대부분 기업들은 '~님', '~프로' 등 서로의 직급과 관계없이 동일한 호칭을 쓴다.

 

주임·대리·과장 등 수직적 직급에서 벗어나야 거리낌 없이 의견을 낼 수 있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투자자와 '홈브루 파티'

제2애플 꿈꿔

판교의 저녁은 새로운 도전과 꿈을 실현하는 기회의 장이다.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이면 세계 시가총액 2위 '애플'과 3위 '마이크로소프트'를 꿈꾸는 판교인들이 '홈브루(Homebrew) 파티'에 모인다.

저녁이면 잠드는 도시는 어떤꿈을 꾸었나

화려한 판교의 초라한 밤

 

자급은 되지만 자족은 안되는 주거문제

초기 창업에서 어엿한 기업의 형태를 갖춰가는 과정은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가 꿈꾸던 미래 모델인데, 교통과 사무실 임차 등 현실적인 문제가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주거도 문제였다. 20~30대 젊은 인력들이 살만한 작은 면적의 주거공간이 판교에는 없었다. 좁은 면적의 아파트를 찾는 젊은 부부도 마땅한 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

"판교테크노밸리 주거시설은 모자란 데 업무시설만 늘어나고 있다"며 "판교 부동산 시세는 계속 올라가고 직장인들은 다른 지역을 찾아가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1구역 : 분당
2구역 : 분당 제외 성남
3구역 : 하남 구리 남양주 가평 양평
4구역 : 광주 여주 이천 안성 용인
5구역 : 과천 의왕 수원 오산 평택 화성 안산 군포 안양 광명 부천 시흥
6구역 : 인천
7구역 : 김포 고양 파주 연천 포천 동두천 의정부 양주
8구역 : 서울 강북 (한강 이북)
9구역 : 서울 강남 (한강 이남)
10구역 : 1~9구역 이외 지역
 
                                                 자료/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판교테크노밸리

임직원거주지

(단위%)

응답자합계

32,217명

일만 하는 오피스타운 '옥에 티'

이탈…

나는 왜 판교를 떠났나

구독경제에 기반한 면도날 렌탈·판매 스타트업 '와이즐리'가 1년 반 만에 판교를 떠난 것도 출퇴근이 화근이었다. 와이즐리는 2017년 3월 분당의 한 아파트에서 김동욱 대표와 친동생, 김 대표의 친구 이렇게 셋이서 의기투합해 출발했다. 

돔없는 알파돔 프로젝트는 산으로…

좌절된 '한국의 롯폰기'

판교 상권의 위기는 곧 판교의 위기

IT산업 기반의 기업하기 좋은 곳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상권이 붕괴되면 곧 생활 인프라가 무너지는 것이고 기업환경도 덩달아 악화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부터 10년 전매제한이 풀리는데, 인프라 악화로 판교 기업들의 외부 이동이 현실화 될 수 있다.

판교역 상권의 상징인 알파돔시티는 단기 투자회수를 목적으로 한 민간 투자자들의 조급함과 지분 제약으로 결정권을 쥐지 못한 공공기관의 한계가 맞물려 현재 모습에 머물렀다.​

돔 없는 알파돔처럼 가장 성공한 신도시 판교에는 주중·낮에만 붐빌 뿐 밤과 주말엔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판교가 반쪽짜리 성공인 이유다. 

 

판교의 성공은 신도시의 희망이 됐다.

판교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이후 등장한 신도시들은 하나같이 '자급자족'을 목표로 첨단산업단지를 유치하고자 했고 그 노력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들의 기대만큼 판교 이후 신도시는 '포스트 판교'가 될 수 있을까.

첨단산단 그후…

'3기 신도시' 성공의 가늠자

판교신도시와 3기신도시 비교

10년 전매제한이 본격적으로 해제되기 시작하는 2020년은

판교의 현재가 미래에도 지속 발전할 것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해다. 

초기의 판교를 단단하게 다졌던 규제들이 서서히 풀리면서

이제 진짜 '자생'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판교는 경기도와 성남의 작은 도시를 넘어서

대한민국 경제를 책임지고 있으며, 세계 IT 기업들과

실력을 겨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판교 리얼리티'의 막을 내리며 다시 찾은 판교는

밤늦도록 기업과 연구소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판교는 오늘도 진화하고 있다.

※사진을 클릭하면 기사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글 : 공지영·신지영·김준석  | 사진 : 임열수·김금보

그래픽 : 박성현·성옥희 | 개발·디자인 : 박주우  | 영상 : 강승호

Copyright (c) by 경인일보 All rights reserved.